[변호사 칼럼] 재판은 과학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과학자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단순하게 말하면 자연현상을 연구하여 새로운 이론을 세우거나, 새로운 발명, 발견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과학자들의 연구방법에서 많이 쓰이는 방법이 가설검증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검증법에 의한 진실발견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일단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가설을 세운 후, 그 가설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는 실험과 근거찾기를 통해 검증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반대되는 실험결과가 나오면 그 가설은 진실일 수 없으므로 폐기된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은 자연과학적 진실찾기에 매우 유용하다. 그래서, 서양사람들은 이 방법을 재판이라는 사회과학적 진실찾기에도 도입하였다. 현재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현대식 재판방법은 가설검증법이라는 과학적 진실발견 방법이 도입된 것이다.
이제, 그 방법이 재판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보자.
예를들어 갑을 을에게 돈을 빌려주고 을이 돈을 안 갚아 재판을 하게 되었다고 하자.
이 재판에서 갑은 "갑이 을에게 돈을 빌려줬다"는 가설을 주장한다. 이 가설은 갑에게는 객관적 진실일지 모르겠지만, 그 외의 사람에게는 가설에 불과하다.
갑은 그 가설을 객관적 자료로 검증하여 자신 이외의 제3자를 설득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은 재판구조에서 제3자는 공정한 현자로 간주되는 판사일테고, 배심원제를 취하는 국가에서는 일반상식을 가진 평범한 보통사람들이다.
그리고, 을은 갑이 객관적 자료를 제시해 검증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이다. 실제, 과학자들의 논문발표시에도 그 논문의 헛점을 짚어대는 무수히 많은 학자들이 있다. 즉 방해세력이 있다. 과학자가 그 방해세력들의 논리를 돌파해야 하듯이, 재판에서 갑도 을의 방해를 돌파해야 한다.
이제 갑이 자신의 가설을 어떻게 검증하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보자.
재판에서 갑이 자신이 을에게 돈을 빌려줬다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 제시하는 객관적 자료를 증거라 부른다. 갑이 제시할 수 있는 대표적인 증거자료는 을이 작성한 차용증일 것이다. 이 경우 제3자가 보기에 을이 차용증을 작성해 갑에게 줬다는 것은 돈을 빌렸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객관적 자료가 된다. 갑이 차용증을 제시한 순간, 이제 을은 돈을 빌린 사람이 되어버리므로, 만일 을이 돈을 빌리지 않았다면, 을이 새로운 가설, 예를 들어 "차용증이 위조된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해야 한다.
한편, 만일 갑에게 차용증이라는 객관적 자료가 없고, 은행송금내역 정도만 있다고 치자. 이 정도의 자료는 대여를 보여주기에 그다지 충분치 못하다. 방해세력인 을은 갑이 돈을 준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고, 예전에 빌려준 돈을 갚은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갑은 자신의 가설을 객관적 자료로 뒷받침 하지 못한 것이 된다. 이제 갑은 돈을 빌려준 것을 목격한 증인을 불러서 자신의 가설을 더 뒷받침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현대식 재판은 자연과학 진실방법을 도입한 제도다. 따라서, 자신의 가설이 검증되지 못하면 진실이라도 묻힌다. 그리고, 이 재판이라는 것은 과거의 사실을 밝히는 것이므로,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실제 자연과학처럼 실험으로 증명하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저, 자신이 과거에 증거를 남기는 과학적인 삶(?)을 살아야만 유리하게 된다. 즉, 증거를 남기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래서, 현대적 법치주의에서는 사후적인 재판보다 사전적인 법률자문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현대식 재판제도가 생겨난 서양은 당연히 사전적 법률자문을 중시여기게 되었으나, 그 제도를 수입한 우리는 아직도 후진적인 사후적 재판에만 치중하고, 재판이 벌어지면 마치 전쟁을 치루듯이 하여 법적으로 이기기 위해서 법외적인 수단까지 총동원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재의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소송할 변호사가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서양식 법치주의를 채택한 이상 초,중,고에서부터 그 기본개념에 대한 교육이 우선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