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칼럼] 민주주의도 이상적 인간을 가정하는데서 실패가 오는것 아닐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지금 우리 사회에 딱 들어맡는 말 같다. 이말은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이라는 책에 등장하는데, 당시 홉스는 사회를 약육강식 투쟁의 장으로 보고 그 투쟁 종결자를 절대왕정의 군주로 봤으며, 그 왕정제도를 옹호하기 위하여 이러한 말을 한 것이었다.
사회를 약육강식으로 바라보고 이를 종결짓기 위해 국가의 필요성을 역설한 시각은, 세세한 점은 다르기는 하나 이후 사회계약론을 주장한 로크, 루소에게도 대체적으로 이어졌다.
로크이후 사회계약론이란, 인간에게 주권을 주면, 그는 나의 권리를 지켜주고, 나의 이익을 보호해 주는 통치자를 선발할 것이다. 그 통치자들은 내 권리를 지켜줄 것이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를 종결지을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면 통치자를 교체해도 된다라는 전제하에 구성된 이론이다.
위와 같은 이론이 등장할 당시 국민들의 권리를 침해하며 문제를 일으키던 통치체제와 통치자는 절대왕정의 군주였다. 특히 유명한 프랑스 대혁명 당시 루이 16세의 프랑스의 절대왕정은 1,2,3신분으로 나뉜 신분제와 3신분에 대한 과도한 세금 등으로 극악의 사회였다. 그러한 상태하에서 발생한 것이 프랑스대혁명이고 로크가 주장한 내 권리를 지켜주지 못하는 권력은 교체대상이라는 점은, 저항권을 정당화 해 주었고,그 혁명발생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 후 그 사회계약론은 민주주의의 이론적 전제가 되어 국민주권, 국민의 통치자선출, 선출된 통치자는 국민주권에 봉사, 위반시 교체라는 민주주의의 큰 틀이 형성되었다.
그렇다고 프랑스는 그 이후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하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종결지었나?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절대왕정 시대의 문제를 일으킨 자들은 왕과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정치와 경제권력을 차지하고, 경쟁자를 배제하며 독점을 누렸고, 신분제를 만들어서 계급간 차단벽을 만들었으며, 그 지위를 대대로 상속하며 권력과 부를 누렸다. 유럽의 절대왕정이 그랬고, 우리의 조선시대가 그랬다.
그런데, 프랑스 대혁명 이후 절대왕정은 쇠퇴하고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지만, 그와 동시대에 등장한 것이 자본주의다. 너무도 유명해 누구나 읽어본 것으로 착각하는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은 공정한 경쟁을 주장한 책이다. 공정한 경쟁을 해야만 개개인의 능력발휘가 되고, 부의 쏠림 현상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공정을 강조한 곳은 사회주의로 발전했고, 경쟁을 강조한 곳은 자본주의로 발전했다. 공정을 강조하는 곳은 국가의 역할이 중요할 수 밖에 없고, 경쟁을 강조하는 곳은 민간의 자율성을 우선한다.
일부 북유럽의 변형된 사회주의외 현재 사회주의는 패망했고, 자본주의가 남았는데, 이 자본주의는 새로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낳았다. 즉, 경제권력자들이 정치권력을 차지하거나 연합하여 독점을 유지하고, 부를 세습하며, 신신분제를 만들고 있다. 즉, 새로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을 만든것이다.
더구나, 이 시스템의 강자들은 시스템을 유리하게 이용한다. 인간이란 원래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이며 단시야적이다. 이에, 현대 통치자들은 미디어를 통한 세뇌라는 개념까지 개발했고 많은 심리학자들이 이 조작에 이용되고 있다. 현재 우리 정치계에도 광고업자들이 들어와있다. 실제 미디어가 발달하기도 전인 민주주의의 원조격인 그리스의 민주주의에서도 민주주의를 중우정치라는 말로 비판하고, 몇 몇 현인들의 정치인 철인정치를 주장한 플라톤도 있었다.
민주주의를 했지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종결된 것이 아니었다.
사회계약론의 대전제는 어디서 작동을 안하는 것일까?
애초, 국민에게 주권을 주면 그들이 올바른 정치인을 뽑아, 투쟁상태를 종결짓거나, 나를 보호해주는 통치자를 선출할 것이다...라는 점이 아닐까. 따라서, 이상적 인간을 가정한 민주주의란 애초 불가한 것이 아니었을까? 더구나, 국민들이 모두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닌데...
아예 왕의 통치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면.... 주권자인 자기보다 못하면 모두 갑질을 해대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좋다고 보는 사람이 더 많다면.... 부정을 하든 뭘 하든 더 나은 학교에 입학시켜 더 나은 스펙을 가지게하는 신분제를 옹호하는 사람이 더 많다면.... 힘들게 살아도 지역감정이 더 중요해 타 지역사람들에게 정권은 못 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면.... 또는, 그런 것이 살아가는데 더 낫다라고 알리는 우민화정책 선동의 미디어가 많다면...
이렇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그 형태만 바뀌었지, 과거나 지금도 항상 존재하는 것 아닐까? 실제, 극악의 삶에서 왕까지 죽여가며 투쟁을 한 경험이 있는 유럽은 좀 더 공정을 강조하며 신분제적 질서를 반대하는 듯하지만, 그렇지 않은 아시아 국가들은 아직 왕정, 신분제적 질서라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듯하다.
다만, 과거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왕정에선 피를 보지 않고 통치자의 교체는 불가했지만, 지금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점은 일단 인정되는 이상 국민들이 마음만 먹으면 그들 손으로 직접 통치자의 교체가 가능하다는 점은 달라졌다.
그런데, 그 국민들이 통치권력을 전반적으로 교체하려면, 프랑스 혁명 전처럼 진바닥을 직접 겪어봐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고난은 전속력으로 그 바닥으로 가는 중일 것일까? 그러면, 속도가 빠른 만큼 좋은 사회도 더 빨리 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