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03

[변호사 칼럼] 민주주의는 이성으로 본능을 누른 시스템이라 경계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개념의 정치체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생긴지 불과 200여년 밖에 안되었고, 역사적으로 수천년간 정치체제로 군림해왔던 것은 왕과 귀족에 의한 신분에 따른 정치다. 어느 나라나, 어느 시기나,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사람들이 모이면 힘이든 돈이든 그 우열에 따라 계급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과 상하관계를 형성하며 구분지어 왔다.

인간의 생존 본능이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강자는 또 다른 강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많은 사람을 자신의 명령에 따르게 하여 대외적으로 힘을 과시하고 싶은 본능이 있을 것이고, 약자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자 밑에 들어가 그들에 복종하면서 살고자 하는 본능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는 정치시스템인 왕과 귀족에 의한 신분제정치는 인간본성에 가장 부합하는 정치체제라 할 것이다. 그래서 수천년간 유지되어 온 것이다.

지금의 민주주의라는 것은 그 시스템이 더 이상 약자들의 생존을 보장해 주지 않음에 따라, 약자들이 힘을 모아 반항하여 만든 새로운 정치시스템이다. 따라서, 인간본능에 부합하기 보다는 강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하여 약자들이 만든 시스템일 뿐이다.

왕 및 귀족에 의한 신분제정치가 인간 본능에 부합하는 정치시스템이라면, 민주주의란 이성으로 본능을 누르고 만든 정치시스템인 것이다.

그리고 그 기원으로 대표적으로 인정되는 것이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다.

이 프랑스 혁명이 발생한 이유는 당연히 당시 강자밑에 들어가 사는 것이 안전하다는 인간본능에 따라 형성된 신분제적 정치시스템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 평민들이 못 살겠기 때문이었다. 즉, 가만히 있다가 죽으나, 한번 반항이라도 해보고 죽으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당시 상황이 국민들에게 안 좋았다.

구체적으로 그 원인을 보면 역시 신분제의 모순이다. 당시 프랑스도 3신분으로 나뉘어 제1신분 성직자, 제2신분 귀족, 제3신분 농민과 부르주아지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신분이 있어도 서로 그걸 인정하며 상위신분이 하위신분을 적당히 괴롭히면 반란이 일어날리가 없다. 그러나, 어디 인간이 그러한가. 적당한 착취란 쉽지 않다.

역시 농민이 가장 심하게 착취당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역시 세금이다. 그 중 염세가 가장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한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7세 이상은 1년에 일정량 이상 소금을 사도록 강요했는데 정부염의 시세는 일반 시세의 10배였다 한다. 이 염세를 못내서 매년 30,000명 이상이 투옥되고 500명 이상이 처형되었고, 그 징수도 관리가 아닌 외주를 줘 징수업자들의 횡포가 심했다 한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횡행하는 외주가 그때에도 있었나 보다. 지금도 외주업자들의 중간착취가 심한데 당시는 어떠했을까.

그런 상황에서 삼부회가 소집되었는데, 거기서 일반 평민들을 대표하던 제3신분이 탄압을 받게되자 이것이 발단이 되어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고 왕정이 폐지되며 공화정이 된 것이다.

그 후 나폴레옹, 나폴레옹 3세의 등장으로 다시 제정이 부활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 때를 시발점으로 입헌 민주주의는 점차 발전하여 현재에 이르렀고 처음에는 제한받던 투표권도 전 국민에게 인정되게 되었다.

이러한 민주주의 역사를 보면, 왕과 귀족이 일반 평민들을 괴롭혀서 그 평민들이 착취와 탄압을 제도적으로 막기 위해 만든 것이 민주주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하나 더하면, 당시 왕과 귀족외에 그들에게 의존하지 않으면서 경제적으로 부유한 자본가 세력이 있었다. 이 자본가 세력은 착취는 덜 당했지만 정치참여 욕구는 컸다. 이 둘의 욕구가 프랑스대혁명을 일으키고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민주주의가 되었다고 그 후 신분제가 없어졌고 착취도 안 당하는가? 현재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돈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철저히 신분이 구분되어 있다. 물론, 그 신분간 이동의 자유가 있지만 그것도 이제는 어려워졌다.

다시 신신분제하에서 착취가 시작되고 있다.

여기서 왕과 귀족의 역할을 하는 것은 이제는 자본가들이다.

그런데, 신분제가 인간본성에 가까워 수천년간 유지되어왔듯이, 이 자본가들이 만든 신분제도도 가만히 두면 인간본성에 부합하기에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실제 자본가들에게 반항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그들이 내려주는 먹을 것을 먹고 사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농노로 농사지으면 먹고 사는 것이 편했듯이.

그렇게 되면, 결국 다시 중세의 신분제적 질서로 회귀하게 될 것이다. 어렵게 신분제를 타파했으나 또 다른 신분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너무 살기 힘들어지면 프랑스 혁명과 같은 반항이 있겠지만, 과거와 달리 현대 신분제의 상위계층인 자본가들은 힘이 너무쎄서 그들이 고용하여 그들 편인 국민들도 너무 많고, 그들 편인 정치인들은 더 많다. 이들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 경계를 늦추면 인간본성에 따라 또 계급사회로 복귀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투표권이라는 매우 강한 무기가 있다. 이 무기로 신분제를 만드려는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우리의 대표자들을 얼마든지 선출하여 신분제 형성을 막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항상 왜 우리가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고 그 한표 한표의 행사에 깊은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우를 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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