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칼럼] 인간에 대한 신뢰만을 기초로 만들어진 제도가 의미 있을까.
민주국가의 대원칙이 권력간의 견제와 균형을 위해 3권 분립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과도한 권한을 가지면 괴물이 된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기초적 세계관에서 3권 분립이라는 것이 나온 것이다.
이 대원칙은 모든 사회제도에 그대로 녹아 있고, 그래야 한다고 본다. 사회제도, 특히 권익을 부여하거나 침해할 수 있는 제도는 그 운영자인 인간에 대한 불신을 기초로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게 견제와 균형의 원칙하에 설계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제도를 설계해도 인간의 사악함이 극악스럽게 발동하면 제도의 헛점을 찾거나 범법을 해서라도 제도를 무력화 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최소한 제도 자체는 잘 설계해야 이 사악함을 억제하고 최소한 사후적으로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설계부터 견제와 균형은 커녕 오히려 인간의 사악함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짜여진 제도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사법제도와 검찰제도이다.
우리나라의 법원과 검찰 시스템은 사법권 및 수사권의 독립이라는 미명하에 아무런 견제없는 시스템으로 만들어 졌다. 사법권의 독립을 만들어낸 서구 사회에서도 사법권의 독립조차 견제되어야 한다는 생각하에 배심제, 참심제 등 많은 제도를 만들어 냈고, 기소권도 기소배심제로 통제하는데 우리는 전혀 견제제도가 없다. 어마 무시한 제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 서구의 검사들은 우리나라 검사에게 수사와 기소독점권이 있다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랄 정도이다.
사실 우리나라 법치주의 자체의 경험이 짧아 제도운영의 경험이 미천하고, 그 간 정치권력의 민주화가 더 문제라서 제도개선에 크게 신경쓰지 못한 원인이 클 것이다.
이러한 견제가 전무한 제도가 잘 운영되려면 그 운영자들이 거의 신적인 도덕성과 직업의식, 능력이 있어야 하나, 그런 인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선발과정부터 전혀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제도가 이러니, 선한 사람이 들어가도 사악하게 변한다. 그 제도로 인해 전관예우, 사회적 대우를 통해 돈과 지위에 대한 욕망이 자극되고, 이 욕망은 가뜩이나 설계부터 엉망인 제도를 더욱 더 악화시켜 견제는 커녕 제도를 돈벌이와 지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쓰기도 한다. 현재는 정치권력까지 그 욕망의 범위가 넓어졌다.
본 변호사가 본 바로는, 이러한 제도하에 운영되는 법조현실은 아래와 같다.
1. 대개 법원과 검찰은 직업적으로 재판과 수사를 대한다.
비율적으로 보면 50% 정도가 그러한것 같다. 즉, 하나의 일로 대하니 업무적으로 편한 쪽으로 일하고, 자신의 이익 즉 승진이나 명성에 관련된 것은 열심히 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성향을 보인다.
이런 경우, 판사나 수사관이 직업적 귀차니즘에 따라 편한쪽으로 판단하지 않도록, 변호사가 거의 모든 쟁점을 다 다루고 제시하며 판단을 유도하여, 판사나 수사관의 노고를 덜어주는 감동을 일으켜야 그나마 의도한 대로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판단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건이라면 편한 쪽을 선택하는 편이고, 유사한 선례가 있을 경우 그 부당성이 있을지라도 법적 안정성이라는 핑계하에 선례에 따른다.
재판의 2심에서는 증인신문은 거의 받아 주지 않는다. 1심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나, 일정도 바쁘고, 귀찮은 듯 한다. 고소사건의 2심이라 할 수 있는 검찰항고제도는 무의미하게 된지 매우 오래다.
특히, 형사재판에서 이 직업적 업무처리 비율이 높은데, 무죄추정이 아닌 유죄추정이 거의 공식화 되어 있다. 무죄판결이 판사들의 시간을 많이 빼앗고, 노력을 많이 요한다는 실무적 문제가 일단 크게 있고, 대개 형사재판을 받는 사람들의 경우 나쁜 사람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사는 귀찮은 수사는 거의 하지 않고, 당사자 조사나 참고인 조사라는 인적수사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 놓고, 수사안한 결과인 증거부족을 불송치나 무혐의의 근거로 삼는다. 자기들이 수사를 덜해 놓고 증거가 부족하다고 하는 것이다. 증거가 잘 보이거나 전체적으로 구도가 잘 잡히는 수사, 승진에 관련된 수사는 힘이 나는지 열심히 하기는 한다.
이런 직업적 재판과 수사가 약 50%의 비율을 이룬다.
그래서, 사실 판사나 수사관의 직업인으로서의 노고를 어느 정도 대신해 줄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재판이나 수사에서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일반인들은 판사나 수사관이 알아서 노력해 줄 것이라 생각하는데 매우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그들의 직업적 노고를 대신해 주기는 커녕 이를 가중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경우 아래 ‘2’와 같은 20프로의 사람들을 만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대부분 패소다. 그들이 패소를 만드는 법률적 기술은 매우 다양하다. 가장 흔한 것이 증거부족이라는 것인데, 판사나 수사관의 직업적 노고를 가중 시킨다면 아마 판결문이나 수사결과문에서 그 증거부족이라는 4글자를 보게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2. 일부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율적으로 20%정도 본다.
부당성을 발견하면 업무적으로 힘들어도 이를 바꿔가려고 하고, 선례에도 도전하기도 한다. 일반인들이 비법률적 주장을 하더라도 잘 살펴서 억울함을 살펴 주기도 한다. 사실 본 변호사는 거의 보지 못했다. 이런 스타일이 바람직스럽긴 하나 매우 힘들게 일하는 방법이라, 대개 위 ‘1’의 직업적 스타일이 어느 정도 섞이게 마련이다.
3. 일부 그 지위를 남용하는 세력이 있다. 비율적으로 30%정도 본다.
이 부류들은 대개 평상시에는 위 ‘1’과 같이 직업인으로서 일한다. 그런데, 은밀한 청탁이나 잇권이 달린 특정사건의 경우에 법원은 재량권을 남용하여 사실인정을 상식밖으로 하며, 때론 고의 오판을 하기도 한다. 검찰은 편파수사, 편파봐주기로 나타난다.
사실 30%도 사실 적게 본 것이다. 위 ‘1’ 부류의 50%라는 사람들은 평상시엔 직업인으로 업무를 대할 뿐인데, 그리 사명감 있을리가 없지 않겠는가. 위 ‘1’ 부류 50% 중에서도 20%내지30%는 언제라도 이 부류로 넘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본다. 나머지 20%내지 30%는 피한다. 자기가 판단을 안하고 사건 처리에 시간을 끌어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
결국, 비율적으로 거의 50% 내지 60% 정도가 특정사건에서는 상식밖의 이상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20% 내지 30%는 그런 판단을 피하려고 하며, 나머지 20% 내지 30%가 정상적으로 판단한다.
법원이 그 정도라 보이고, 검찰의 경우는 외압이나 청탁이 들어온 사건에서 정상적 판단비중은 잘 봐도 10%이하다. 내 경험으로 돈 많던 기업사냥꾼 고소 후 거의 7년간 이송을 반복해 오며 처리가 안된 사건도 있었다.
변호사로서 오래 일하다 보니, 이런 재판과 수사를 경험하다 보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본능적으로 온다. 판사나 검찰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거의 보인다. 이 경우, 본 변호사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려고 하나, 아예 의도를 가지고 재판과 수사를 하면 백약이 무효다. 그냥 그들의 의도대로 결론이 나올 뿐이다.
동시대 우리들은 현 제도의 이런 어머 어마한 결함을 잘 못느낄 것이고, 그 치명성의 정도도 잘 모를 것이다. 재판이나 수사는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일이니 그럴 것이고, 그 업무처리자들이 누구나 선망하는 고시라는 제도에 합격한 소위 엘리트라고 생각하니 설마 하는 심정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100년이나 200년후의 먼 미래의 후손들이 현재 사법과 검찰제도를 보면, 아마 오로지 인간에 대한 믿음만으로 제도를 운영한 선조들(즉 현 시대의 우리들)의 용감함과 무식함에 분명히 놀랄 것이다. 본 변호사는 우리 후손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