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칼럼] 한국식 능력주의는 왜 더 잔인한가 - 지옥의 사다리 위에서
우리는 늘 말한다.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라고.
그 말을 가장 극단적으로 구현한 나라가 있다. 미국이다.
그리고 그 사회를 이상적으로 여기며 따라온 나라가 있다. 한국이다.
그러나 이제 분명히 말해야 한다.
미국식 능력주의는 실패했고, 한국식 능력주의는 그 실패를 더 교묘하고 더 잔인하게 수입했다.
미국의 능력주의는 허상이었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고 불렸다.
부모의 지위나 출신에 관계없이,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가 있었다.
그것이 미국의 성공을 이끌었지만,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많이 퇴색되었다.
- 의료비 때문에 파산하고,
- 교육비 때문에 빚을 지고,
- 집값 때문에 가족이 흩어지고,
-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아픈 날에도 출근해야 했다.
이것이 세계 최강국의 노동자 현실이다. 그러니 트럼프까지 등장했다.
트럼프의 등장은 현대판 프랑스 혁명과 같은 것이다.
능력주의는 자유와 기회를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상위 10%에게 모든 자원을 몰아주고, 나머지 90%는 추락을 각오한 사다리에 줄을 선 구조였다.
한국은 그 능력주의를 더 교묘하게 수입했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미국을 마치 예전 중국 모시듯이 하는 나라다. 그래서 대부분의 제도를 미국에서 수입한다. 그러니 미국식 능력주의의 허상도 한국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더구나, 역사적으로 신분제 사회였던 한국은 미국식 능력주의라는 것은 신분제도 퇴색할 가능성이 너무 높다.
미국보다 복지도 약하고, 인종 갈등도 덜하며, 교육열도 훨씬 강한 이 나라는, 능력주의라는 껍질 아래 더 극심한 생존 경쟁과 불공정을 숨기고 있고, 결국 신 신분제도를 만들었다. 한국의 능력주의는 ‘입시’와 ‘스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다.
어릴 때부터 학원과 시험, 비교와 평가 속에 내던져지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집”이 능력의 증거이자 인간의 가치가 되었다.
그러나 출발선은 달랐다.
강남과 비강남, 고소득과 저소득, 부모 찬스와 무배경.
한국식 능력주의는 ‘기회의 평등’은 철저히 무시한 채, 결과만 공정한 척하는 위선적 구조가 되었다.
더 큰 문제는 NO 노블리스 오블리제, 제도불공정이다 – 법과 권력이 가진 자의 편
미국은 그래도 서구식 합리주의 철학의 기초하에서 만들어진 나라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고, 시스템에서 공정한 시늉은 하여, 사법부는 그래도 공정한 편이다. 합리주의 정신에 따라 실패에 대해서도 우리보다 관대하고, 정보는 공개하며, 독점은 끔찍히 싫어한다.
하지만 한국은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없다.
조선시대에도 그런 건 없었다. 민중의 힘으로 살아온 나라다. 그러니, 현대에도 검찰과 사법부마저 가진 자의 편에 서 있는 사회다.
정보는 공개하지 않으려고 하고, 재벌의 독점도 자유롭다. 그러니, 능력주의의 승자들은 너무 살기 좋은 나라다. 법적 처벌에서까지 자유로우니 천국이 따로 없다.
돈있으면 미국보다 살기좋은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인간의 직감은 정확하다. 왜 헬조선이라고 하겠는가. 실제 신분제의 조선시대로 회귀한 것이다. 그리고, 조선시대 처럼 권력이라는 것도 가진자를 편드는 사회가 된 것이다.
정의는 법전에 있고, 현실에는 없다.
이 나라에서 법은 불평등한 능력주의를 유지하는 수단이자, 기득권을 지키는 방패막이가 되었다.
입법부, 행정부는 상당히 개선되었지만, 사법부는 사법부 독립이라는 미명하에 철저히 폐쇄적이고 그 결과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되어 가진자 편을 많이 든다. 그렇게 능력주의는 더 이상 게임의 규칙이 아니라, 사전 짜여진 각본이자, 실패할 사람들을 분류하는 도구가 되었다.
여기서는 아무리 뛰어도 사다리가 없다
미국은 화려하지만 살기 힘든 나라다.
그 구조를 그대로 따라한 한국은 화려하지도 않고, 살기도 더 힘든 나라가 되어버렸다.
능력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능력 있는 부모를 가진 사람만 성공할 수 있다면 그건 능력주의가 아니라 현대의 신분제 사회다.
입시와 취업, 자산과 출산, 복지와 의료. 모든 영역이 돈과 정보와 배경에 따라 갈린다면 이 사회는 지옥과 다름없다.
계층 이동 없는 능력주의는 계층 고착의 다른 이름이고, 그것은 단지 더 세련된 형태의 지배 체제일 뿐이다.
이제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나는 능력에 따른 보상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보상이 공정하려면 출발선이 공평해야 하며,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있어야 한다.
그 핵심은 국가의 책임이다. 교육, 보육, 주거, 의료를 시장에 맡기지 않고,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여야 한다. 아이의 미래가 부모의 소득으로 결정되지 않도록, 기회가 운이 아니라 제도로 보장되도록 설계해야 한다.
묻자. 우리는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
왜 그 사람은 능력을 펼칠 수 없었는가?
왜 그 아이는 경쟁에 참여조차 할 수 없었는가?
왜 실패는 개인의 탓이고, 기회는 일부의 특권이 되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우리는 능력주의 사회가 아니라 지옥의 사다리를 타는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공정한 사회란 성공의 차이는 있어도, 존엄의 격차는 없는 사회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