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8

[변호사 칼럼] 조선의 율관과 오늘의 판사 - 법기술이 도리를 대신할 때

조선의 법제는 의외로 섬세했다.

법을 다루는 사람과 판단하는 사람을 분리해 두었다.

법문을 해석하고 형률을 정리하는 사람은 율관(律官), 즉 법기술자였다.

반면, 형벌을 결정하고 판단을 내리는 사람은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배운 선비, 즉 도덕적 교양을 갖춘 자였다.

조선의 기본 전제는 단순했다.

법기술은 기술직의 몫이고, 판단은 도리를 아는 사람의 몫이다.

그것은 조선시대에서도 인간 사회의 상식이자, 정의의 최소한의 구조였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는 그 질서를 완전히 뒤집었다.

현대의 사법제도는 법의 기술자들에게 판단권까지 맡긴다.

법조문을 해석하고 절차를 관리하는 이들이 사회 정의의 최종 심판자 역할을 한다.

조선의 율관에게 재판권을 준 셈이다.

조선식 사고로 보면,

인간의 도리를 배운 적 없는 자들에게 사회의 정의를 맡긴 것이다.

현대의 법학교육은 도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법전과 판례, 논증기법은 가르치지만,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은 교육의 영역 밖으로 밀려났다.

법이 단순히 기술과 논증이라면, 그것은 인간보다 AI가 훨씬 더 잘할 것이다. AI 판사가 등장했을 때 인간 판사가 설 자리가 있을까? 오직 '도리'와 '측은지심'을 아는 인간만이 AI를 넘어선 판결을 할 수 있다. 지금처럼 기술자가 된 판사들은 결국 AI에게 대체될 첫 번째 직업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기술교육의 결과, 법은 사람의 삶을 다루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법조인들은 ‘합리적 판단’을 내린다 하지만, 그 합리는 대개 기술적 완결성에 불과한 합리일 뿐이다.

인간적 통찰이 빠진 합리는 냉정이 아니라 공허한 절차가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구조가 고착화되었다는 점이다.

판사는 한 번 임용되면 거의 평가받지 않는다.

도리에 어긋난 판결을 내리더라도 제도는 그를 도태시키지 않는다.

심지어 그가 쌓은 판례가 ‘정의의 기준’으로 남는다.

조선 시대라면 판단자의 인격이 곧 재판의 무게였지만, 지금은 그 무게를 견제할 장치조차 없다.

우리는 조선보다 훨씬 진보된 법체계를 가졌지만, 법을 다루는 인간의 수준은 오히려 퇴보했다.

법의 전문성은 높아졌지만, 그 안에 ‘도리’라는 인간의 언어는 사라졌다.

조선은 최소한 그 상식을 알고 있었다.

법은 기술이 아니라 도덕의 형식화된 언어라는 것을....

그래서, 조선은 율관에게 판단을 맡기지 않았다.

그 이유는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 것이다.

사회에는 좋은 사람, 옳은 사람, 착한 사람, 정의로운 사람이 판결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상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더 발전했다는 지금 사회는 조선만도 못하다.

그 상식을 잃은 지금 사회에서 정의는 절차로 대체되고,

판결은 ‘옳음’이 아니라 ‘그냥 절차수행 문서’로 남는다.

물론, 도리를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지속적 교육으로 그 감각이 살아있게 해야 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판결을 한 사람들은 사후적 도태로 배제는 시켜야 할 것이다.

그 외에도, 배심원제 도입, 법조 일원화 강화 및 실질화도 매우 중요하다.

도리를 배우지도 않고, 배울 생각도 없는 법기술자들이 세상을 재단할 때,

그 사회의 정의는 정의의 언어를 가장한 행정 처리로 전락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법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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