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8

[변호사 칼럼] 성범죄 사건에서 발생하는 법의 도덕화와, 비난회피적 판단의 문제점

법은 인간의 복잡함을 단순화한다.

그러나 인간의 관계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사람의 감정, 오해, 기대와 후회가 얽혀 하나의 장면을 이루고,

특히, 남녀간의 문제는 더욱더 복잡하다.

그러나, 오늘의 성범죄 재판은 그 복잡성을 견디지 못한다.

모든 맥락이 잘려 나가고, 남는 것은

“그는 했다 / 그녀는 거부했다”라는 흑백의 문장뿐이다.

성범죄의 영역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동의(consent)’의 판단이다.

형법적으로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항거불능 상태에서의 행위’ 같은 객관적 기준이 있었지만, 이제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 그 범위가 확장됐다.

즉, 강제성뿐 아니라 동의 여부 자체가 핵심이 된 것이다.

문제는 ‘동의’가 명시적일 수도, 묵시적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감정과 신호가 복잡하게 얽힌 관계를 사후적으로 법이 재구성하면, 그레이존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흑백논리로 정리된다. 때론 묵시적 동의라 오해할 수도 있는 미묘한 감정적 영역도 있을 것이나 이런 부분은 모두 없어진다.

이건 젠더갈등의 차원을 넘어서, 형법이 감정의 영역을 다루는 한계다.

최근 들어 많은 법학자들이 지적하는 건 “동의 중심주의”이나 매우 위험하다. 명시적 동의를 강조하는 건 피해자 보호에 유리하지만, 그게 인간관계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계약’처럼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우스개 소리로 요즘 나오는 말이 "계약서 쓰고 성관계 해야한다"는 말이다.

모든 감정적 접촉이 “법적으로 증명 가능한 동의 여부”로 환원될 때, 결국 신뢰와 소통의 문화는 사라진다.

다시 말하면, 지금 한국의 성범죄 법리는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정의감에 치우쳐, 행위의 맥락과 관계의 총체성을 세밀히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건 ‘여성의 권리 강화’가 아니라, 법의 도덕화(moralization)라고 보인다.

더구나, 성범죄 사건은 정치적으로나 언론적으로 매우 위험한 지형이다.

한쪽으로만 오판해도 ‘2차 가해자’ 혹은 ‘여성혐오자’로 낙인찍히기 쉽다.

그래서 많은 수사관과 판사들은 “의심스러우면 기소하자”,

“피해자 진술은 최대한 존중하자” 쪽으로 기운다.

‘법적 판단’이 아니라 ‘리스크 회피’가 우선되는 구조다.

결국 성범죄 사건에서 법은 진실을 가리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책임을 최소화하는 관료적 방패가 된다.

이건 젠더 편향이 아니라, 두려움이 만든 관료 편향이다.

법적 판단은 본질적으로 용기 있는 판단이다.

모두가 한쪽으로 몰릴 때 냉정하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힘.

그러나 지금의 법조인 사회는 용기보다 안전을 택한다.

재판이 아니라 여론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의는 사라지고, 남는 것은 두려움뿐이다.

법이 다시 균형을 찾으려면,

판단자들이 구호나 감정이 아닌 맥락을 보아야 한다.

증거의 질, 진술의 일관성, 관계의 총체성을 정직하게 읽는 훈련.

그건 법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 성숙의 문제다.

좋은 판결은 논문에서 나오지 않는다. 인격에서 나온다.

진정한 정의는 두려움이 아니라 용기에서 시작된다.

이와 같이 성범죄사건에서는,

법이 도덕화 되는 경향이 있고, 비난 회피적인 사건 처리의 성향이 보인다.

그러나, 법이 인간의 복잡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정의라는 이름으로 많은 희생양을 만들 뿐이다. 어려울수록 더 신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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