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8

[변호사 칼럼] 로마의 법정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다: '사법 만능'의 비극

1. 서론: 2천 년 전 로마를 걷는 기분

요즘 여의도 뉴스를 보면, 나는 종종 2천 년 전 로마의 포로 로마노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영웅적인 로마가 아니다. 공화정이 무너져 내리던 기원전 1세기, 혼란의 로마 말기다.

당시 로마는 칼과 창보다 '소장'이 먼저 날아다니던 시대였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발하고, 법정에 세워 정치 생명을 끊는 것이 일상이었다. 변호사로서 나는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에서 그 불길한 로마의 그림자를 본다.


2. 대전제: 로마는 왜 법전이 아닌 칼 아래 무너졌는가

역사는 냉혹한 대전제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정치가 실종되고 그 공백을 사법이 채우면, 시스템은 붕괴한다."

로마 공화정 말기, 정치인들은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본령을 버렸다. 대신 상대를 '범죄자'로 낙인찍어 법원으로 끌고 갔다. 당대 최고의 변호사였던 키케로가 화려한 언변으로 법정을 누볐지만, 그것은 정치의 승리가 아니라 사법의 과잉이었다.

결과는 어땠는가? 법정 다툼으로 국론은 분열됐고, 시스템은 마비됐다.

'법대로 하자'는 외침이 공허해졌을 때, 사람들은 지지부진한 법 대신 확실한 해결사를 원했다. 그 틈을 타고 등장한 것이 율리우스 카이사르, 바로 '군대(무력)'였다. 법 기술자들이 망쳐놓은 정치를 군인이 와서 끝내버린 셈이다. 공화정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3. 소전제: 대한민국, '정치의 사법화'라는 위험한 도박

이제 시선을 2025년의 대한민국으로 돌려보자. 우리의 현실은 로마의 말기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정치적 갈등이 생기면 국회 본회의장이 아니라 서초동 검찰청으로 달려간다. 선거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고소·고발로 판을 뒤집으려 한다. 여야 할 것 없이 상대방을 '구속해야 할 잡범'으로 취급한다.

그 결과,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판사와 검사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슈퍼 의회'가 되어버렸다.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이것은 결코 정상적인 법치주의가 아니다. 정치가 스스로 무능함을 자백하고, 사법부에 통치권을 헌납하는 '정치의 자살' 행위다.


4. 결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로마의 사례를 대전제로 삼아, 우리의 미래를 연역해 보면 끔찍한 결론에 도달한다.

첫째, 사법 시스템의 붕괴다. 사법부가 정치적 사건의 뒤치다꺼리를 계속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어느 한쪽의 비난을 받게 된다. "정치 검찰", "정치 판사"라는 비난 속에 사법부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누구도 판결에 승복하지 않는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혼란이 올 것이다.

둘째, 극단적 포퓰리즘의 등장이다. 매일같이 서로를 고발하며 싸우는 모습에 지친 국민들은, 복잡한 법 절차를 무시하고 "다 쓸어버리겠다"고 외치는 극단적인 선동가(현대판 카이사르)에게 환호할지 모른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종말이다. 그래서, 근래에 우리사회는 복잡한 절차를 감당할 인내심을 잃고, 단순하고 강렬한 해결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득실대는 것 같다.

로마의 몰락은 ‘법의 기술자들이 정치의 도구가 되고, 법이 정치에 개입하는 순간’ 시작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똑 같은 장면을 보고 있다.

법은 사회의 최소한의 도덕이자 안전장치일 뿐이다.

정치가 법을 수단으로 이용하고, 법이 정치를 집어삼키는 순간, 그 사회는 활력을 잃고 경직되어 부러지고 만다. 사법은 사법부 본연의 역할을 해야하지, 정치인들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되고, 법이 정치에 개입할 생각을 해서도 안된다.

우리는 로마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상대를 감옥에 보내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를 파트너로 인정하고 공존하는 기술을 복원해야 한다. 검찰청 앞, 법정안이 아니라, 국회 회의장에서 치열하게 논쟁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역사는 말한다.

법정에서 승리하여 얻은 정권은, 결국 또 다른 법정에서 무너질 것이라고.

또한, 법정이 정치에 개입하는 순간 그 법정은 붕괴하고 말 것이라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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