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칼럼] 왜 그들은 멈추지 않고 싸우는가: 여의도 죄수의 딜레마
1. 서론: 전쟁터가 된 정치, 의문은 시작된다
뉴스를 켜기가 두렵다. 정책 토론은 사라지고, 상대방을 향한 고소·고발과 원색적인 비난만이 난무한다. 국민들은 묻는다. "도대체 왜 서로 조금만 양보해서 협치하지 못하는가?" 그들이 인격적으로 덜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탐욕스러워서일까?
변호사의 시각에서, 그리고 논리적인 구조를 즐겨 찾는 입장에서 나는 이 현상을 도덕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로 바라보고자 한다.
수학과 경제학이 만나는 지점, 바로 '게임이론(Game Theory)'이 이 비극적인 싸움의 원인을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2. 대전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론의 가장 유명한 예시인 '죄수의 딜레마'를 정치판에 대입해 보자. 여기 두 명의 공범(여당과 야당)이 따로 취조를 받고 있다. 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다. '침묵(협치)'하거나 '자백(비방/고소)'하는 것이다.
이 구조에서 발생하는 경우의 수는 다음과 같다.
(1) 둘 다 협치(침묵)할 때: 국민의 신뢰를 얻고 나라도 발전한다.
(2) 나만 협치하고 상대가 비방(자백)할 때: 상대는 '개혁의 투사'가 되고, 나는 '무능한 집단'으로 몰려 정권을 뺏긴다.
(3) 나만 비방하고 상대가 협치할 때: 나는 상대를 짓밟고 승리한다.
(4) 둘 다 비방(자백)할 때: 진흙탕 싸움이 되어 둘 다 욕을 먹지만, 적어도 일방적으로 당하진 않는다.
3. 소전제 : 정치를 게임이론에 대입하면?
논리적으로 보면 둘 다 협치하는 1번이 국가를 위해 가장 좋다.
하지만 정치 현실(선거)에서는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할지 확신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여당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야당이 신사적으로 나올 때, 내가 비방하면 압승한다. 야당이 비방하고 나올 때, 내가 가만히 있으면 파멸한다. 따라서 야당이 어떻게 나오든 나에게 가장 유리한(혹은 덜 위험한) 선택은 '비방과 고소'를 먼저 날리는 것이다. 이를 게임이론에서는 '우월 전략'이라고 부른다.
상대방 역시 똑같은 계산을 한다.
4. 결론 : 진흙탕이 답이다.
결국 양쪽 모두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무한 대립'이라는 최악의 균형점(내쉬 균형)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들이 싸우는 건 멍청해서가 아니다. 현재의 승자독식 선거 구조 하에서는 싸우지 않는 것이 수학적으로 '자살행위'이기 때문이다.
서로 싸우면 둘 다 손해지만, 싸움을 멈출수록 나는 일방적으로 당한다는 공포 때문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고착 상태가 내쉬 균형이다.
결국, 정치인에게 협치는 착한 선택이 아니라,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선택이 될 수 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정치인들의 진흙탕 싸움은 논리필연적 귀결....
물론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국민들이 바보냐? 싸우기만 하는 놈들은 표로 심판할 것이다."라고 말이다. 맞다. 우리 국민은 밥만 축내며 싸우는 국회를 혐오한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발생한다. 정치인들은 국민의 '혐오'보다 자기 진영 지지자들의 '환호'를 더 크게 듣는다. 내가 점잖게 협치를 이야기할 때 상대가 "저 범죄자!"라고 소리치면,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나는 '해명하다 지친 무능한 사람'이 되고 상대는 '선명한 투사'가 된다.
결론적으로, 정치인들이 싸우는 이유는 국민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네거티브가 먹혀들 것'이라는 공포, 그리고 '점잖게 굴다간 집토끼(지지층)를 놓친다'는 계산 때문이다. 그들은 국민의 높은 시민의식을 믿지 못하고, 낡은 계산법(게임의 룰)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경쟁의 도구가 '법'이 되었다는 점이다. 정치가 실종된 자리에 고소장이 날아들고, 사법부가 심판으로 등판한다. 그러나, 심판은 공정한가? 공정하기라도 하면 그나마 낫지만 정치의 영역에서 심판에게 항상 공정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들도 인간이고 정치적 편향이 있다. 그래서 심판이 경기장에 난입하기도 한다. 그렇게 납입하는 순간, 공정성은 의심받고 사법 시스템마저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소모된다. 이것은 단순한 낭비를 넘어 사회적 자본의 파괴다.
이 비극적인 딜레마를 과연 깰 방법은 없을까?
지금의 게임이론은 상대를 공격하고 비난해야 같은 진영에서 표를 얻고, 상대가 공격하는데 협력을 추구하면 같은 진영조차 돌아서고, 중도층에게는 약자로 보여 표를 잃게 된다는 대전제하에 서 있다.
이 대전제가 작동하는 한 정치인들은 계속 싸울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국민들이 대전제를 깨는데 있다. "상대를 악마화해서 얻는 표는 없다"라는 새로운 신호를 시장(선거)에 줘야 한다. 국민들이 바뀌면 정치인도 바뀐다.
그러나 이 해법이 가능한가?
이러한 지극히 유토피아적인 판단과 행동은 이성과 본능을 동시에 갖춘 인간에게 있어서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정치인들과 언론이 국민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자꾸 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당장 내 집 값 올려주고 세금 낮춰주겠다는데.. 이성이 작동되겠나.. 때론 마비되기 마련이다. 물론 마비가 일상인 사람들도 있다.
결국 국민에 의한 이상적 해법은 때론 작동하고 때론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국민들이 언제라도 오판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권력분립, 임기제같은 권력분립장치를 두었다.
참 어려운게 민주주의다. 어떤게 옳은지 이성적으로는 알면서도 잘 못한다. 그래서, 제도도 그런 인간을 믿지 못하여 권력을 분립하고, 임기제를 두었다.
민주주의는 묘한 제도다.
인간의 이성을 믿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믿지 않는 방법으로 설계한 정치제도.
정말 예술 같은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