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칼럼] 정치각인 이론 - 왜 영남은 변하지 않는가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부화한 새끼 오리가 처음 본 움직이는 대상을 어미로 인식하여 평생 따라다니는 '각인(Imprinting)' 현상을 발견했다. 결정적 시기에 형성된 이 각인은 이후 어떤 정보로도 수정되지 않는다. 로렌츠 자신을 어미로 각인한 새끼 오리들은 실제 어미 오리를 만나도 로렌츠만 따라다녔다. 각인은 학습이 아니라 생리적 낙인이기 때문이다. 면역학에도 비슷한 원리가 있다. 태아 시절부터 접촉한 항원에 대해서는 '자기'로 인식하여 공격하지 않는 면역 관용이 형성된다. 한번 관용이 생기면 그 항원이 나중에 해로워져도 면역계는 반응하지 못한다.
그런데, 한국 영남지역의 정치 선택도 이 각인 및 면역 관용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산업화를 경험한 영남의 특정 세대는 그 시기를 결정적 시기로 삼아 보수정당에 각인되었다. 포항제철이 들어서고 경부고속도로가 뚫리던 그 시절, '개발=보수정당'이라는 등식이 뇌리에 새겨진 것이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그 각인은 지속되고 있다.
보수정당이 IMF 외환위기를 초래했을 때도, 국정농단으로 대통령이 탄핵당했을 때도, 부동산 폭등으로 청년들이 좌절했을 때도 영남의 투표 패턴은 흔들리지 않았다. 각인된 새끼 오리가 로렌츠를 따라다니듯, 각인된 세대는 보수정당을 따라다닌다.
이는 합리적 선택이 아니라 생리적 반응이다. 체스에서 고수들이 초반 10~15수를 통째로 암기하여 사고 없이 자동으로 두듯, 영남 유권자들은 매 선거를 '보수정당 찍기'라는 암기된 오프닝으로 시작한다. 정책 공약을 읽을 필요도, 후보자 검증을 할 필요도 없다. 오프닝은 이미 암기되어 있으니까.
문제는 상대가 변칙수를 두었을 때다. 보수정당이 분열하거나 제3지대 후보가 등장하면 암기된 오프닝이 깨지면서 혼란만 가중된다. 2022년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하기 전, 영남 일부 지역에서 나타난 혼란이 그 예다. 오프닝 암기에 익숙한 기사는 중반전 사고력이 떨어진다. 더 심각한 것은 면역 관용이다. 영남은 보수정당을 '자기편'으로 각인한 결과, 그 정당의 부패나 무능에 대해 면역 관용이 형성되었다. 보수정당 인사의 부동산 투기, 인사 청탁, 권력형 비리는 '자기 항원'이므로 면역계가 반응하지 않는다. 반면 진보정당의 사소한 실수에는 과잉 면역반응을 보인다. 외부에서 온 '적 항원'이기 때문이다. 조국 전 장관의 자녀 입시 문제에는 분노하면서, 보수정당 고위직 자녀들의 비슷한 특혜에는 침묵하는 것이 그 증거다.
면역 관용은 이성이 아니라 생리의 영역이므로, 설득으로 바꿀 수 없다. 같은 사안, 다른 잣대. 이것이 면역 관용의 실체다.
이를 '정치각인 이론'이라 부를 수 있겠다. 한 세대가 정치적 결정적 시기에 특정 정당에 각인되면, 그 선택은 이후 합리적 검증 없이 본능적 충성으로 고착되고, 그 정당에 대한 면역 관용까지 형성되어 비판 기능이 마비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이 검증된다면, 영남 지역주의의 극복은 설득이나 계몽으로 불가능하다는 냉정한 결론에 이른다. 각인은 재학습되지 않고, 면역 관용은 이성으로 제어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일한 해법은 세대교체뿐이다. 각인되지 않은 새 세대가 유권자의 다수가 될 때, 비로소 영남의 투표 패턴도 달라질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로렌츠를 따라다니는 새끼 오리들을, 그리고 암기된 오프닝만 반복하는 체스 기사들을 지켜봐야 한다.
민주주의는 인내를 요구한다. 생리적 시간은 정치적 시간보다 느리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