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칼럼] 정치적 진자이론 - 20대 남성 보수화의 물리학
물리학에서 진자는 흥미로운 특성을 보인다. 한쪽 끝으로 강하게 밀린 진자는 중심에서 멈추지 않는다. 반대쪽 끝까지 과도하게 이동한 뒤에야 비로소 되돌아온다. 처음 가해진 힘이 클수록 반대편으로의 진폭도 커진다. 균형점을 찾기까지 진자는 필연적으로 양 극단을 오간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도 이 진자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386세대가 주도한 진보 담론은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를 한쪽 끝으로 강하게 밀었다. 성평등, 소수자 인권,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명분 아래 정책과 담론이 일방향으로 집중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20대 남성이라는 집단이 '가해자'로 고정되었다는 점이다. 군 복무는 당연한 의무로 치부되고, 취업 시장의 블라인드 채용과 여성 할당제 앞에서 이들은 '양보해야 할 기득권'으로 규정됐다.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진보 진영에서 '특권 상실에 대한 불만'으로 해석되며 무시당했다.
오목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실제와 다르다고 항변해도, 거울을 쥔 쪽에서는 '그게 네 진짜 모습'이라 단언했다. 거울의 곡률이 클수록 왜곡은 심해진다. 진보 담론이 강할수록, 20대 남성에게 씌워진 '가해자' 프레임도 강화됐다.
그들은 결국 그 왜곡된 이미지를 거부하며 정반대 방향으로 자신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나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나는 기득권이 아니라 차별받는 약자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극단적 보수 담론을 선택했다. 이념이 아니라 반작용이었다. 물리학의 진자처럼, 한쪽 끝으로 과도하게 밀린 사회는 반대쪽 끝으로 격렬히 흔들린다.
2022년 대선에서 20대 남성의 투표 성향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그들의 보수 지지율은 부모 세대를 넘어섰고, 일부는 극우 유튜버의 선동적 콘텐츠에 열광했다. 이는 단순한 세대 보수화가 아니다. 진보 담론이 만든 거울의 곡률이 너무 컸기에, 반사된 이미지의 왜곡 역시 극단으로 치달은 것이다.
내가 변호사로서 목격한 수많은 갈등 사례들도 비슷한 구조를 보인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수록, 반대편의 저항은 더 극렬해진다.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방의 목소리를 무시하면, 상대는 법정에서 더 강경한 주장으로 맞선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20대 남성의 목소리가 '들을 가치 없는 불만'으로 치부되는 순간, 그들은 더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려 한다. 물론 이들의 일부 주장에는 반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의 여성혐오가 섞여 있다. 그러나 그 혐오조차 진자 운동의 산물이다. 진보 진영이 이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아세울수록, 이들은 '우리가 진짜 피해자'라는 서사로 맞받아쳤다. 거울이 왜곡하면, 반사도 왜곡된다. 이제 진자는 반대편 끝에 도달했다. 문제는 이 진폭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이를 '정치적 진자이론'이라 부를 수 있겠다. 사회가 한쪽 이념으로 과도하게 기울면, 다음 세대는 반대 극단으로 과잉보정되며, 균형점 도달 전까지 극단을 오간다는 이론이다.
20대 남성의 보수화는 386세대 진보의 반작용이다. 진자는 결국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양 극단을 경험하며 사회는 소모된다. 이 이론이 맞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극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진자를 멈추게 할 균형추다.
20대 남성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왜곡된 거울을 바로 세우며, 진보와 보수 모두 상대를 악마화하지 않는 성숙함이 그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는 여전히 진자를 더 세게 밀고 있다.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