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7

[변호사 칼럼] 안정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 그들은 나약한가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누었다. 생리·안전 욕구가 충족되어야 비로소 소속·존중 욕구를 거쳐 자아실현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이론이다. 하위 욕구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상위 욕구는 사치일 뿐이다. 이 단순한 원리는 지금 한국 청년들이 왜 공무원과 대기업, 안정적 일자리에 매달리는지를 설명하는 열쇠다.


요즘 청년들은 도전 정신이 없다는 비판을 자주 듣는다. 창업과 혁신을 외면하고 시험에만 매달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처한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 선택은 너무나 합리적이다. 청년 실업률은 공식 통계보다 체감이 훨씬 높다. 취업해도 비정규직이거나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주거비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월급의 절반을 월세로 내야 하는 청년이 수두룩하다. 결혼과 출산은 고사하고 당장 내일의 생존이 불안하다. 이런 환경에서 자아실현이니 꿈이니 하는 말은 공허하다. 매슬로우의 이론대로라면, 안전 욕구조차 충족되지 않은 사람에게 자아실현을 요구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변호사로 일하며 수많은 청년 의뢰인을 만났다. 부당해고, 임금체불, 산재 문제로 찾아오는 이들 대부분은 비정규직이었다.

법적으로 싸워봤자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는 걸 그들은 안다. 그래서 처음부터 안정적인 곳을 찾는다. 창업에 실패하면 빚더미에 올라앉고, 프리랜서로 도전하다 실패하면 받쳐줄 그물조차 없다. 한국 사회는 청년에게 도전하라고 말하면서도, 실패한 청년에게는 가혹하다. 재기의 기회를 주지 않고 낙인을 찍는다. 청년들이 안정을 추구하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이 사회가 하위 욕구조차 보장하지 못한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비판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문제는 청년의 마음가짐이 아니라 그들이 딛고 설 바닥이다. 매슬로우의 피라미드는 위에서 아래로 무너지지만, 쌓을 때는 아래에서 위로 쌓인다. 토대가 흔들리면 그 위의 어떤 층도 올라가지 못한다. 사회안전망이란 바로 그 토대다. 흙이 척박하면 아무리 좋은 씨앗도 싹트지 않는다. 거꾸로, 흙이 비옥하면 굳이 재촉하지 않아도 싹은 스스로 올라온다. 안전망이 두꺼울수록 그 위에서 도전·창업·자아실현이라는 상위 욕구가 자연히 싹튼다. 도전 정신은 설교로 심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토양에서 저절로 자라나는 것이다.


이 과제는 인공지능 시대에 이르러 선택이 아니라 절박함이 된다.

지금까지의 안전망은 '일자리'를 전제로 설계되었다. 일하면 임금을 받고, 그 임금이 생존을 떠받친다는 전제다. 그러나 AI는 그 전제 자체를 흔든다. 노동의 상당 부분이 자동화되면, '일자리만 있으면 안전하다'는 명제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노동소득 자체가 불안정해지는 시대다. 역사는 이미 한 번 답안을 보여준 적이 있다. 산업혁명기, 기계가 사람의 손을 대체했을 때 토지와 일거리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새 안전망 없이 방치되었고, 그 대가는 한 세대의 빈곤과 사회 불안이었다. 지금 우리는 같은 분기점에 서 있다. 이 시대의 안전 욕구를 떠받칠 새로운 토대가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일을 하지 말라'는 신호가 아니라, 일의 형태가 무너져도 사람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받침이다. 매슬로우의 맨 아래 칸을 노동시장에만 맡겨둘 수 없게 된 시대의 합리적 설계다.

물론 반론이 있다.

조건 없이 돈을 주면 사람을 나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솔직히 인정하자. 일부는 그럴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사고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안전망과 기본소득은 '비용'이 아니라 '분산투자'다.

벤처투자의 세계에는 멱법칙이 있다. 100개 기업에 투자하면 90개는 사라지고 9개는 본전이지만, 단 1개의 성공이 나머지 99개의 손실을 모두 덮고도 남는 수익을 낸다. 투자자는 99%가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분산해 투자한다. 그 1%가 어디서 나올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농부도 마찬가지다. 씨앗이 다 싹트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넉넉히 뿌린다. 싹튼 것들의 수확이 마을 전체를 먹이기 때문이다.

사회안전망은 국가가 청년 전체에 거는 분산투자다. 그 돈을 받은 99명이 그대로 머문다 해도, 생존의 불안에서 풀려난 단 1명이 다음 단계의 욕구로 올라서서 새로운 사업을, 새로운 기술을,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낸다면 — 그 1%가 거두는 수확이 나라 전체를 먹여 살린다.

우리가 아는 혁신가 대부분은 처음부터 천재였던 것이 아니라, 실패해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는 최소한의 안심 위에서 비로소 위험을 감수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안전망이 거르는 것은 나태가 아니라, 안전망이 없었다면 영영 발현되지 못했을 1%의 잠재력이다.

청년들이 안정 일자리만 찾는다고 비판하기 전에, 우리는 이들에게 안전한 토대를 마련해주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매슬로우의 이론이 맞다면, 자아실현을 바라기 전에 먼저 생존의 불안을 걷어내야 한다. 토대를 깔지 않은 채 도전을 요구하는 것은, 콘크리트 위에 씨앗을 뿌려놓고 왜 싹이 나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일과 같다. 청년들의 선택은 그들의 나약함이 아니라, 이 사회의 구조적 불안정을 반영하는 신호다. 기본소득과 사회안전망은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아직 싹트지 않은 1%에 거는 이 사회의 가장 확실한 투자다. 그 신호를 외면하는 한, 도전과 혁신은 끝내 소수의 특권으로 남을 뿐이다.

법무법인 한백 변호사 이진화변호사 이진화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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