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7

[변호사 칼럼] AI시대 과연 수능은 타당한가?

1. 전문가를 흉내 내는 아이들



필자도 고등학생 자녀를 둔 입장에서 최근 수능문제를 풀어보고 기가 막혔다.

현재의 수능은 마치 거대한 '논리의 고문실' 같았다. 


변별력이라는 대전제 아래, 국어나 영어 지문에는 대학 전공 서적에서나 볼 법한 고도의 전문 지식이 등장하고, 수학과 탐구 영역은 인간의 인지 한계를 시험하는 꼬인 문제들로 가득했다. 독서가 취미인 필자도 이해하기 어렵거나 상당히 인지적 노력을 해야 하는 지문이 많았다. 


몇 몇 문제들은 문제자체의 기교함과 복잡성으로 그 유용성을 찾아 볼 수가 없었고, 이걸 과연 제 시간내에 풀수 있을지도 의문이 들었다. 특히, 이 문제를 제대로 풀었다고 해도 지능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을 지 매우 의문이었다. 요령만 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필자가 보기에 지금 수능은 이제 겨우 세상의 원리를 배워가는 고등학생들에게 전문가의 칼날을 휘두르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건, 갓 걸음마를 뗀 아이에게 100m 장애물 경주를 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2. 학습의 다양성이 필요하다.


지금 시대에 우리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다.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 이 대전제를 보면 답이 명확해 진다.  


"점이 두세 개밖에 없으면 연결해서 만들 수 있는 도형은 선분이나 삼각형뿐이다. 하지만 작고 선명한 점들이 수십 개가 뿌려져 있다면, 그 안에서 별자리도 만들고 은

하수도 그릴 수 있게 된다."


창의성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점들을 잇는 유추의 힘'에서 나온다. 물리학의 원리가 경제학의 현상을 설명하고, 동화 속의 이야기가 법학의 논리가 되는 '구조적 매핑'은 오직 풍부한 지식의 점들이 확보되었을 때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수능은 어떤가? 


몇개의 점을 가지고, 비틀고 비틀어서 테스트하고 있다. 

이게 과연 타당한가? 


물론, 지금의 수능이 된 이유는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학습 부담 경감'이라는 명목하에 과목 수를 줄여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꽤 흐르니, 오히려 역설적으로 몇 몇 과목으로 학생들을 구분해내야 하니 난이도가 기형적으로 높아졌다. 그 결과 수능 과목 수는 줄었지만, 킬러 문항의 복잡도와 사교육 의존도는 비례해서 상승했다. 좁은 영역에서의 극한 경쟁은 학생들을 '문제 풀이 기계'로 만들 뿐, 지식과 지식을 연결하는 '통합추론 능력'을 마비시킨다.


AI시대에 지식의 깊이나 복잡성은 AI를 통해 상당히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지금은 넓고 다양한 지식을 갖춰, 이것들을 연결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다.

AI는 기존 점들을 통계적으로 연결하지만, 인간의 유추는 연결에서 새로운 점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이 연결을 통한 새로운 점 창조가 AI와 경쟁할 때 인간이 내세울 수 있는 창의성의 원천인데, 지금 수능은 이 창의성의 싹을 근본부터 죽이고 있다.  


AI 시대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과목의 벽을 낮추고, 배우는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난이도를 낮추어 사유의 여백을 확보하고, 그 공간을 다양한 분야의 '대전제'들로 채워줘야 한다.


3. 연결을 위한 교육으로의 회귀


이제 교육의 '대전제'를 바꿔야 한다. 수능은 누가 더 전문적으로 지식을 알고, 정교하게 연역적 집행을 할 수 있는지 가리는 시험이 아니라, 누가 더 넓은 세계를 이해하고 연결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과목을 늘려서, 학생들이 역사, 철학,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도메인의 '사고법'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이 배움의 다양성이 창의성의 원천이 되어 세상을 발전시키는 무기가 된다. 


특히, 인문학의 국사와 역사, 자연학의 기초과학은 다양하게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물리학의 상전이가 인간세계의 혁명과 연결되고,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인간세계의 법과 정치의 존재이유와 연결된다. 다양성을 갖춰야, 자연세계의 원리와 인간세계의 원리를 연결하고 확장할 수 있다.  


학습부담이 문제라고? 

이것은 과목은 늘려도 난이도를 낮춰서 해결하면 된다.

지금처럼 과목은 줄이고 난이도를 높이면 학습부담은 더 고통스럽게 찾아온다.  


변별력이 문제라고? 

변별력은 문제를 어렵게 해서도 생기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문제를 내는 것 자체로 해결된다. 넓은 지식을 원인과 결과로 이해해야 풀 수 있는 문제만 출제해도 역사, 윤리, 사회, 물리, 화학, 생물 등의 많은 과목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기에 변별력이 충분히 생긴다. 교과서 범위내라고 할지라도 역사도 잘 알고, 수학도 잘 알고, 물리도 잘 알고... 그런 사람 많지 않다. 그런데, 그걸 해내는 사람이 지능이 뛰어나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겠는가? 어떤 영역을 가져와도 원인과 결과관계를 잘 파악할테니까... 


다양성을 얘기할 때 핀란드 고등학교 커리큘럼은 깊은 참고가 될 것이다.  

모국어와 문학, 외국어, 제2외국어, 환경학, 시민교육, 종교 또는 윤리, 역사, 사회,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지리, 체육, 음악, 미술, 공예, 가정경제 등 폭넓은 과목들로 구성되어 있다. 핀란드는 "교과 간 경계를 넘는 역량"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4. 결론 - 은하수를 꿈꾸는 아이들을 위하여


지식은 고립될 때 썩고, 연결될 때 진화한다. 

우리 아이들이 좁은 골목에서 서로를 밀어내는 레이스를 멈추고, 드넓은 지식의 밤하늘에서 자신만의 별자리를 그려낼 수 있도록 판을 갈아주어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에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유추적 사고'를 길러주는 유일한 길이다.

법무법인 한백 변호사 이진화변호사 이진화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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