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6

[변호사 칼럼] 조광조의 운전대, 율곡의 방향타 -「진보의 설계도」 1편 "이념의 위치에 관하여"

1. 들어가며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한다

한국 정치를 오래 관찰하면 기이한 반복이 보인다. 진보 정당은 담론에서 자주 이기고 선거에서 자주 진다. 이긴 뒤에도 오래 가지 못한다. 집권하면 내부의 정통성 논쟁이 시작되고, 누가 더 순수한가를 다투다가, 어느새 국민이 아니라 서로를 심판하고 있다. 왜 이 패턴은 반복되는가.

흔한 답은 둘이다. 하나는 "진보가 무능해서"라는 답이고, 다른 하나는 "언론 지형이 기울어서"라는 답이다. 둘 다 부분적으로 사실이겠지만, 둘 다 반복을 설명하지 못한다. 무능은 사람이 바뀌면 고쳐져야 하고, 지형은 진 쪽의 사정이지 이긴 뒤에 무너지는 이유가 못 된다. 반복되는 실패에는 사람도 환경도 아닌, 구조가 있다고 봐야 한다.

이 연재는 그 구조를 찾는 작업이다. 그리고 구조를 찾는 데는 방법이 필요하다.

방법에 관한 짧은 고백

정치에는 물리학 같은 연역체계가 없다. "진보란 무엇인가"에서 출발해 "그러므로 이렇게 하라"를 도출할 공리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영역에서 사고를 진전시키는 방법은 하나다. 같은 구조를 가진 다른 사례를 찾아, 그쪽에서 이미 판명된 결과를 이쪽으로 가져오는 것. 유추다. 다만 겉모습이 닮은 것을 가져오면 수사가 되고, 뼈대가 같은 것을 가져오면 분석이 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뼈대가 같은 사례가 있다. 500년 전, 지금의 진보와 놀랍도록 동형의 구조를 가진 정치 세력이 있었다. 도덕적 이상으로 무장하고, 기득권을 개혁 대상으로 규정하고, 담론에서 이기고, 그리고 몰락한 사람들. 사림이다. 그중에서도 두 사람 - 조광조와 이율곡 - 을 나란히 놓으면, 반복되는 실패의 구조 변수 하나가 정확히 드러난다.

2. 대전제: 이념은 방향타이지 운전대가 아니다

먼저 자를 하나 만들자.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의 윤리를 둘로 갈랐다. 신념윤리는 원칙의 순수성을 기준으로 삼는다. 결과가 나빠도 "내 신념은 옳았다"고 말할 수 있으면 된다. 책임윤리는 행위가 낳을 예측 가능한 결과에 책임지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베버의 결론은 양자택일이 아니었다. 위대한 정치가는 신념윤리를 방향타로 삼고 책임윤리를 운전대로 잡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구분을 자로 쓰면, 정치 세력을 가르는 질문은 "이념이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게 된다. 질문은 이것이다. 이념이 어디에 놓여 있는가. 배가 갈 방향을 검증하는 기준 자리에 있는가, 아니면 사람을 뽑고 자르고 벌하는 운전대 자리에 있는가.

3-1. 소전제 1: 조광조 - 이념을 운전대에 놓은 정치

조광조는 이상이 높아서 실패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나는 이 통념이 실패의 핵심을 비껴간다고 본다. 그의 이상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이상이 놓인 자리였다.

조광조의 핵심 정책을 보라. 현량과는 학문과 덕행, 즉 이념적 순수성을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 인사 제도였다. 위훈삭제는 중종반정 공신 백여 명의 훈작을 "자격 없는 자"로 규정해 박탈하는 숙청의 정치였다. 소격서 혁파는 이단 시설의 철거였다. 세 정책의 공통 구조가 보이는가. 전부 정통과 이단을 판별해 사람을 올리고 내치는 일이다. 이념이 정책의 검증 기준이 아니라, 인사의 칼로 쓰이고 있다.

이념이 운전대에 놓이면 정치의 성격이 바뀐다. 정책 경쟁은 정통성 경쟁이 되고, 반대자는 틀린 사람이 아니라 나쁜 사람 - 소인(小人) - 이 된다. 소인과는 타협할 수 없으므로 연합의 폭은 좁아지고, 적은 늘어난다. 위훈삭제로 훈구 세력 전체를 적으로 만든 지 나흘 만에 기묘사화가 터졌다. 등용에서 사사(賜死)까지 4년. 조광조는 이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이상을 칼로 썼기 때문에, 칼로 되받은 것이다.

3-2. 소전제 2: 율곡 - 이념을 방향타에 놓은 정치

이율곡은 조광조를 존경했다. 성리학적 이상에서 두 사람 사이에 거리는 없다. 다른 것은 이상의 배치였다.

율곡의 대표 정책을 보라. 수미법은 공납의 폐단 - 방납업자가 중간에서 백성을 수탈하는 구조 - 을 도덕 훈계로 고치려 하지 않았다. 현물 공납을 쌀로 통일해 수탈이 발붙일 중간 구조 자체를 제거하는 세제 설계였다. 백성이 착해지기를 기다린 게 아니라, 백성과 아전과 상인의 이해관계가 놓인 판을 다시 짠 것이다. 십만양병론도 같다. "왜적은 사악하다"는 규탄이 아니라, 병력과 재정의 회계에서 출발한 대비책이었다.

주목할 것은 이때 이념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율곡에게 성리학은 여전히 "무엇이 좋은 정치인가"를 판별하는 최종 기준이었다. 다만 그 기준으로 사람을 심판하지 않고 정책을 검증했다. 이상은 방향타에 있고, 운전대에는 이해관계의 설계가 있다. 베버가 300년 뒤에 정식화할 구조를, 율곡은 먼저 살았다.

반론에 미리 답한다: 율곡도 실패하지 않았는가

여기서 정직해야 한다. 율곡의 노선은 당대에 승리하지 못했다. 수미법은 채택되지 않았고, 그는 동서분당의 조정에 실패했으며, 말년에는 서인으로 몰려 탄핵당했다. "율곡처럼 하라"는 처방이 순진하게 들리는 이유다.

그러나 이 실패는 논증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완성한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율곡의 구조는 사후에 입증되었다. 수미법은 그의 사후 대동법이라는 이름으로 실현되어 조선 후기 최대의 개혁으로 평가받는다. 설계는 옳았고, 다만 당대의 정치가 그것을 소화하지 못했을 뿐이다. 둘째, 율곡을 삼킨 것이 무엇이었는지 보라. 동인과 서인의 당쟁 - 즉 조광조 구조의 집단 버전이다. 사림은 훈구를 이기고 권력을 잡자, 정통성 판별의 칼을 이번엔 서로에게 겨눴다. 군자당과 소인당을 가르는 정치가 사문난적의 낙인으로, 예송의 정통 논쟁으로 300년을 이어졌다. 이념을 운전대에 놓는 정치의 무서움은, 그것이 옳은 설계마저 집어삼킨다는 데 있다.

4. 적용: 오늘의 동형 구조

이제 자를 현재에 대보자. 관찰자의 눈에 보이는 것은 이렇다.

오늘 진보 정치의 내부 언어에는 판별의 어휘가 많다. 개혁 세력과 수구 세력, 진짜와 사이비, 청산과 부역. 공천과 인사의 기준으로 정책 능력보다 정통성 - 어느 편에 서 왔는가 - 이 자주 작동한다. 지지자 문화에서도 노선 이탈자에 대한 낙인이 정책 논쟁보다 격렬하다. 하나하나는 사소해 보이지만, 구조로 묶으면 낯익다. 이념이 검증 기준의 자리를 떠나 인사와 심판의 운전대에 앉아 있는 것 - 현량과와 위훈삭제의 구조다.

이 구조의 비용은 조선에서와 동일하게 청구된다. 정통 판별의 정치는 연합을 좁힌다. 51%가 필요한 게임에서 순수성의 검문소를 세울 때마다 아군이 줄어든다. 그리고 집권에 성공하는 순간, 판별의 칼은 갈 곳을 잃고 내부로 향한다. 기묘사화는 외부의 반격이었지만 동서분당은 내부의 자해였다. 담론에서 이기고 권력에서 지고, 권력을 잡으면 서로를 심판하는 반복 - 이것은 우연도 무능도 아니고, 이념의 배치가 낳는 구조적 필연이다.

공정을 위해 덧붙인다. 이 병은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보수 역시 시장 근본주의가 교리가 될 때, 혹은 색깔론이 정책 검증을 대체할 때 정확히 같은 구조에 빠져 왔고 같은 방식으로 패배해 왔다. 이념의 운전대 정치는 진영의 병이 아니라 정치 일반의 중력이다. 다만 도덕적 정당성을 정체성의 핵으로 삼는 세력일수록 이 중력에 더 세게 끌린다는 것 - 사림이 그랬고, 그 구조적 후계가 지금 어느 쪽에 가까운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5. 결론: 이상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자리를 옮기라는 것이다

예상되는 반발이 있다. "그러니까 이상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라는 말인가." 아니다. 이 글의 주장은 정확히 그 반대다.

이상을 버린 진보는 존재 이유가 없다. 조광조가 남긴 도학의 깃발이 있었기에 사림은 사화의 잿더미에서 재기해 결국 시대의 기준이 되었다. 이상은 정치 세력의 가장 느리게 축적되지만 가장 오래가는 자산이다. 문제는 이상의 유무가 아니라 배치다. 방향타의 이상은 세력을 살리고, 운전대의 이상은 세력을 죽인다. 조광조와 율곡은 같은 이상을 다른 자리에 놓았고, 그 배치의 차이가 4년의 파국과 사후의 대동법을 갈랐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이 남는다. 이상을 방향타로 올려보냈다면, 비어 있는 운전대에는 무엇을 놓아야 하는가. 

율곡의 수미법이 힌트를 준다 - 그는 사람의 도덕이 아니라 사람의 욕망이 흐르는 길을 다시 설계했다. 욕망을 막을 것인가, 흐르게 할 것인가. 이 질문에는 500년보다 더 오래된 원형이 있다. 물을 막아 실패한 아버지와, 물길을 터서 성공한 아들의 이야기. 다음 편은 거기서 시작한다.
법무법인 한백 변호사 이진화변호사 이진화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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