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8
[변호사 칼럼] AI로 분업의 시대가 끝나간다. 그 끝에 차별화된 생각의 가치가 부각된다.
테일러는 노동을 초 단위로 쪼개 표준화했고, 포드는 그 쪼갠 동작을 컨베이어벨트에 걸었다. 분업은 일을 잘게 나눈다. 나뉜 일은 표준화되고, 단순화되고, 획일화된다. 그래야 누구로든 대체할 수 있고, 그래야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다. 효율은 폭발했고, 산업의 시대는 그렇게 지어졌다. 그리고 개인은 그 안에서 집행의 한 부품으로 도구화되었다.
그런데 지금, 그 분업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생각해보라. 분업이 최적화한 것이 무엇인가. 표준화되고 단순화되고 획일화된 일의 집행이다. 그런데 바로 그 일을, 이제 AI와 로봇이 인간보다 더 잘한다. 정해진 규칙을 따라 문서를 만들고, 코드를 짜고, 답을 내는 일 – 분업이 그토록 정교하게 다듬어온 그 영역이, 통째로 기계의 것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은 어떻게 움직일까. 자본은 늘 가장 효율적인 분업 파트너를 택해왔다. 그 파트너가 이제 인간이 아니라 AI와 로봇이다. 분업을 통한 인간의 집행은, 그래서 종말을 맞는다. 사무직의 해고는 비극적 사건이 아니라, 이 거대한 교체의 첫 장면일 뿐이다. 개인의 실직은 예외가 아니라 예정이다.
여기서 대부분은 공포를 본다. 나는 반대로 본다.
이것은 추방이 아니라 해방이다.
집행의 부품 자리에서 밀려난 인간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답은 역설적이다. 바로 그 AI의 도움으로, 집행의 부품이 아니라 생각의 주인으로 돌아간다. AI는 세 가지 방식으로 당신을 돕는다.
첫째, AI를 이용한 유추로 생각을 넓혀라
AI는 집행만 하는 기계가 아니다. 남과 다른 구조의 틈을 지정하면, AI는 생물학에서 법학까지 모든 영역을 횡단하며 닮은 구조의 후보들을 물어다 준다. 유추의 탐사가 곡괭이에서 굴착기로 바뀌는 것이다. 물론 어디를 팔지 지정하는 것도, 물어온 후보를 판정하는 것도 구조를 가진 사람의 몫이다. 그 몫을 쥔 사람에게, 생각은 전에 없던 속도로 넓어진다.
둘째, 노동을 덜어낸 생각으로 집행을 극단까지 밀어붙여라
페이디아스도 미켈란젤로도 생각의 사람이기 이전에 노동의 사람이어야 했다 – 구상의 시간은 늘 집행의 노동에 잡아먹혔다. AI가 그 노동을 맡는 순간, 집행에 묶여 있던 시간이 통째로 생각으로 돌아온다. 노동을 덜어낸 생각이 극대화되고, 극대화된 생각이 손실 없이 집행된다.
로도스의 거상, 올림피아의 제우스상 같은 세계 7대 불가사의도,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도, 바흐도 쇼팽도, 마이클 잭슨도 – 모두 연역의 극단화였다. 극대화된 생각이 한 치의 손실도 없이 손끝까지 흘러, 다시 만들어질 수 없는 경지가 된 것이다. 불가사의(不可思議), 헤아릴 수 없다는 그 이름은 사실 집행의 이름이 아니라 생각의 이름이었다. 이제 당신도 가능하다 – 당신의 영역에서, 당신의 경지가.
이것은 분업으로의 회귀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분업은 구상과 판단까지 찢었지만, 사람과 AI의 역할 나눔은 구상과 판단을 온전히 한 사람에게 남긴다. 건축가가 벽돌을 나르지 않아도 건물이 건축가의 작품이듯, 쓰기를 맡겨도 저자는 생각을 공급한 사람이다.
셋째, 집행의 수단을 통합하라
이제 코딩도, 음악도, 그림도 모두 당신의 집행 수단이다. 쓰기밖에 모르던 사람이 코딩으로 SaaS를 세우고, 작곡을 배운 적 없는 사람이 아이디어를 음악으로 만들고, 그림을 못 그려도 웹툰을 그린다. 표현 수단이 늘면 생각의 도달 범위도 넓어진다.
과거에 이런 통합은 둘 중 하나가 필요했다. 브루넬레스키처럼 여러 영역의 기술을 한 몸에 지닌 집행의 다능이거나, 신전을 세우는 도시국가, 천장화의 교황청처럼 전문가들을 동원하는 자본이었다. 이제 두 빗장이 함께 풀렸다. 영화를 만들려면 제작비가, 사이트를 세우려면 개발팀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구조를 가진 한 사람과 AI면 된다.
여기서 누군가 묻는다. AI라는 도구 자체는 결국 거대 자본의 것이 아닌가. 맞다. 그러나 핵심은 소유가 아니라 이용이다. 전기를 보라. 발전소는 자본이 소유하지만 콘센트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AI는 지능의 전기다. 모델은 자본이 소유하되, 그 이용은 만인에게 열렸다. 통합에 필요한 것은 도구의 소유가 아니라 이용이며, 미켈란젤로에게는 교황청이 필요했지만 오늘의 개인에게는 콘센트 하나면 된다.
그러니 모든 것은 단 하나로 수렴한다. 생각이다.
생각을 넓히는 것도, 깊게 하는 것도, 여러 수단으로 집행하는 것도 – 세 가지 도움의 한가운데에는 전부 같은 것이 놓여 있다. 당신의 생각이다. 그리고 AI는 인류가 쌓은 모든 것의 평균을 집행할 뿐, 평균과 다른 전제를 스스로 세우지 못한다. 평균은 정의상 ‘남과 같은 구조’다. 집행이 공짜가 되고 수단이 만인에게 열릴수록, 결과물의 차이는 오직 하나에서 나온다 – 남과 다른 생각의 구조. 분업의 끝에서 부각되는 것은 바로 그 차별화된 생각의 가치다.
그래서 결론은 명령형이 된다. 남과 다른 생각으로, 자기만의 지식 구조를 세워라. 그러지 못하면 길은 하나뿐이다. 평균을 찍어내는 자본과 AI에게 정복당하는 것. 그러나 독창적인 구조를 가진 자에게 AI는 정복자가 아니라 도구다. AI에게 집행당하지 말고, AI를 집행하라.
이제, 생각의 시대다.
생각을 확장하고, 집행에서 노동을 위임하여 생각할 시간을 벌고, 생각과 집행의 수단을 통합하라.
– 생각이 문을 연다.
– 생각이 문을 연다.
법무법인 한백 변호사 이진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