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4

[변호사 칼럼] 엘도라도 사례로 본 전문증거 배제의 법칙

엘도라도 사례로 본 전문증거 배제의 법칙

황금 인간 하나가 어떻게 황금 제국이 되었는가 - 그리고 법은 왜 그것을 막는가

1. 황금 인간에서 황금 제국으로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은 콜롬비아 고원에서 한 의식의 소문을 들었다. 무이스카족은 새 족장이 즉위할 때, 그의 몸을 끈적한 수지로 바르고 그 위에 금가루를 불어 살아있는 황금상으로 만들었다. 그는 과타비타 호수 한가운데로 뗏목을 저어 나가, 금과 에메랄드를 신께 바치고 호수에 몸을 담갔다.

스페인인은 이 사람을 "엘 옴브레 도라도(El Hombre Dorado)", 곧 "황금을 칠한 사람"이라 불렀다. 엘도라도의 출발점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실재했다. 1969년 파스카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무이스카 황금 뗏목은, 뗏목에 탄 족장과 수행원들을 정교하게 묘사하며 그 의식이 실재했음을 증언한다.

그런데 이 사람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소문이 한 입 건널 때마다 그는 부풀어 올랐다. 황금 인간은 황금 도시가 되었고, 도시는 황금 왕국이 되었으며, 왕국은 마침내 황금 제국이 되었다. 

정복자들은 한 세기 동안 그 제국을 찾아 아마존과 기아나의 정글을 헤맸다. 호수의 물을 빼냈고, 강을 거슬렀고, 부하들을 잃었고, 어떤 이는 그 끝에 처형대에 올랐다. 그러나 황금의 도시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발견된 것은 작은 봉헌물 몇 점뿐, 전설이 약속한 황금 산더미는 어디에도 없었다.

실재한 핵(의식을 치르는 한 사람) 위에, 실재하지 않는 거대한 외피(황금 제국)가 씌워진 것이다. 무엇이 이 변형을 만들었는가? 답은 법정에 있다.

2. 법정은 왜 '전해 들은 말'을 막는가

우리 형사소송법 제310조의2는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을 원칙적으로 부정한다. 공판정 밖에서 한 타인의 진술을 그 내용의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법정에 들이는 것  - 이른바 전문증거(傳聞證據)는, 법이 정한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 한 증거로 쓸 수 없다. 이것이 전문증거 배제의 법칙, 줄여서 전문법칙이다.

왜 막는가. 핵심은 반대신문의 결여다. 
"내가 그 사람한테서 들었는데…"로 시작하는 진술은, 원래 그 말을 한 사람(원진술자)을 법정에 세워 캐물을 수 없다. 선서도 없고, 법관이 그 사람의 태도를 관찰할 수도 없으며, 무엇보다 상대방이 반대신문으로 그 진술의 빈틈을 찌를 수 없다. 검증의 칼날이 닿지 않는 진술은, 아무리 그럴듯해도 사실의 토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영미 증거법은 이 위험을 더 분석적으로 쪼갠다. 전언傳言에는 네 가지 오류 가능성이 도사린다.

지각(perception): 애초에 정확히 보았는가.
기억(memory): 본 것을 정확히 기억하는가.
표현(narration): 기억한 것을 정확히 말로 옮기는가.
진실성(sincerity): 거짓이나 과장의 동기는 없는가.

반대신문은 이 네 지점을 하나씩 두드려 보기 위한 장치다. 전문증거는 바로 이 두드림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때문에 배제된다.

3. 엘도라도는 검증 없는 전문증거 사슬이었다

이제 엘도라도를 법정에 세워 보자.
황금 제국이라는 '주장'의 증거능력을 따진다면, 그것은 전형적인, 그리고 최악의, 전문증거다.

원진술자는 누구인가. 무이스카의 의식, 곧 호수에 금을 바치는 한 사람이다. 그러나 정복자들은 그 의식을 직접, 온전히 본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전해 들었다. 그 전언은 다시 연대기 작가에게로, 다른 정복자에게로, 후대의 윤색자에게로 건너갔다. 엘도라도 전설은 여섯 개의 독립된 기록에서 나왔고, 그 뒤의 모든 묘사는 이 여섯의 확장이다. 한 입에서 다음 입으로 건널 때마다 진술은 조금씩 자라났다.

법정의 언어로 말하면, 황금 제국은 원진술자를 소환할 수 없고, 반대신문이 불가능하며, 전달의 각 고리마다 검증의 칼날이 닿지 않은 진술의 사슬이다. 그 사슬의 끝에 선 "황금 제국이 존재한다"는 명제는, 법정이라면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법정에는 전문법칙이 없었다. 그래서 검증되지 않은 전언이 그대로 '사실'의 지위를 얻었고, 수천 명이 그 사실을 향해 목숨을 걸었다.

4. 전문의 네 가지 위험, 엘도라도에 대입하면

엘도라도의 사슬은 전문의 네 위험을 교과서처럼 통과한다.

지각 - 정복자 대부분은 의식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들이 받은 것은 이미 한 번 이상 전달된 정보였다.

기억 - 솔론에서 플라톤까지가 아니라, 정복자에서 후대 기록자까지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세부는 닳고 비틀렸다. 호수와 금가루라는 핵심만 공통으로 남고 나머지는 판본마다 달라졌다.

표현 - "금을 바치는 사람"이 "금으로 뒤덮인 사람"으로, 다시 "금으로 지은 도시"로 옮겨졌다. 한 단어가 다음 단어로 번역될 때마다 규모가 한 칸씩 부풀었다.

진실성 - 그리고 결정적으로, 전달자들에게는 거짓과 과장의 동기가 있었다. 더 큰 황금을 약속해야 더 큰 원정 자금을 얻을 수 있었다. 진술의 방향을 왜곡할 가장 강력한 이해관계가 사슬 전체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반대신문이 있었다면 이 네 지점은 모두 무너졌을 것이다. "당신은 그 도시를 직접 보았는가?" 한 질문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그 질문을 던질 법정이 없었기에, 사슬은 끝까지 살아남았다.

5. 욕망은 전언을 한 방향으로 부풀린다

여기서 전문법칙의 가장 깊은 통찰이 드러난다. 전언의 오류는 무작위가 아니다. 그것은 욕망의 방향으로 체계적으로 기운다.

소문은 아무렇게나 변형되지 않는다. 듣는 사람이 바라는 쪽으로 부풀어 오른다. 황금을 갈망하는 자들의 입을 거치면, "금을 바치는 사람"은 "황금 도시"가 될 수밖에 없다. 마르코 폴로의 일본이 지붕까지 금으로 덮인 섬으로 부풀어 콜럼버스를 움직인 것과 같은 원리다. 진실의 작은 핵이, 전달자의 욕망이라는 펌프를 거치며 거대한 거짓으로 팽창한다.

전문법칙이 단순한 '신빙성 의심'을 넘어서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것은 인간 인지에 내장된, 동기에 의해 추동되는 정보 팽창이라는 보편적 오류에 대한 제도적 방어선이다. 법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검증의 칼날을 거치지 않은 전언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실에서 멀어지되 듣는 자가 원하는 쪽으로 멀어진다는 것을.

그래서 전문법칙의 예외 또한 의미심장하다. 
법은 모든 전언을 막지 않는다.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특신상태)"에서 이루어진 진술처럼, 전달의 신뢰를 담보하는 정황이 있을 때는 예외를 인정한다. 즉 전문법칙의 진짜 질문은 "전해 들은 말인가"가 아니라 "이 전달이 욕망에 오염되지 않았다고 믿을 정황이 있는가"이다. 엘도라도는 그 정황을 정확히 반대로 갖추고 있었다. 직접 목격자의 부재, 수십 년의 지연, 그리고 황금에 대한 탐욕이라는 가장 강력한 오염원.

6. 전문법칙은 소송 기술이 아니라 사고의 방어선이다

전문증거 배제의 법칙을 법정 안에만 가두면 그 진가를 놓친다. 그것은 증거의 규칙이기 이전에 사고의 규칙이다.

우리는 매일 엘도라도를 듣는다. "그 회사 곧 상장한대." "그 사람 원래 그런 사람이래." "이 동네 곧 재개발된대." 전해 들은 말이 한 입씩 건너며 욕망의 방향으로 부풀어, 마침내 '사실'의 단단한 외양을 얻는다. 법정 밖의 우리에게는 반대신문이라는 강제 장치가 없다. 그러니 그 장치를 스스로 마음에 설치해야 한다.

방법은 법이 이미 알려주었다. 어떤 주장을 만났을 때 네 가지를 물어라. 
원진술자는 누구이며 직접 본 사람인가(지각). 얼마나 오래된 전언인가(기억). 전달되며 단어가 부풀지 않았는가(표현). 그리고 이 말을 퍼뜨리는 자에게 그렇게 말할 이득이 있는가(진실성). 마지막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 정보가 누군가의 욕망과 같은 방향으로 자라고 있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엘도라도다.

황금 제국을 찾아 정글에서 죽어간 이들과 우리를 가르는 것은, 더 나은 지도가 아니라 더 나은 질문이다. 전해 들은 말 앞에서 "직접 보았는가"를 물을 수 있는가. 전문증거 배제의 법칙은, 법정이 수백 년에 걸쳐 다듬어낸 그 질문의 정수다. 그것은 황금의 도시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가장 오래된 방어선이다.
법무법인 한백 변호사 이진화변호사 이진화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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