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칼럼]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 여행의 '회유 이론'
연어는 태어난 강을 떠나 드넓은 바다로 나간다. 수천 킬로미터의 낯선 해류를 헤치며 몸을 키우고, 때가 되면 다시 자신이 태어난 그 강, 그 여울목으로 돌아온다.
흥미로운 것은 이 귀환이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는 점이다. 바다를 경험한 연어만이 산란할 수 있다. 바다를 모르는 연어에게 모천은 그저 강일 뿐이지만, 바다를 건너온 연어에게 모천은 비로소 '고향'이 된다. 떠남이 완성되어야만 귀환이 의미를 갖는다는 이 단순한 생태적 사실은, 인간의 여행에 관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를 정확히 짚어낸다.
우리는 흔히 여행의 가치를 목적지에서 찾는다. 어떤 나라를 다녀왔는지, 어떤 풍경을 보았는지, 얼마나 특별한 경험을 했는지를 기준으로 여행의 성패를 가른다. 그러나 여행이 인간에게 작동하는 실제 메커니즘은 그보다 훨씬 뒤편에 있다.
여행의 본질은 '분리'에서 시작된다. 익숙한 언어, 익숙한 관계, 익숙한 역할에서 잠시 떼어내지는 것. 해외에서 길을 잃거나, 말이 통하지 않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거나, 낯선 도시의 새벽을 홀로 걸을 때 — 그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설명해주던 익숙한 맥락들을 잃는다. 직업도, 직함도, 역할도 없이 '그냥 한 사람'으로 서게 된다. 그 불편함이 실은 여행이 건네는 가장 값진 선물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변화는 여행 중에 일어나지 않는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 일어난다. 오랜 기간 해외에 살다 귀국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한국을 떠나고 나서야 한국이 보였다'는 것이다. 밖에서 바라본 시선이 생기고 나서야, 안에 있을 때는 당연했던 것들이 비로소 낯설게 보이기 시작한다. 교통 체계, 가족 관계, 직장 문화, 심지어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까지. 비교의 준거점이 생겼을 때만 사람은 자신이 서 있는 곳의 좌표를 실감한다.
실제로 심리학 연구들은 해외 거주 경험이 자기 개념의 명확성과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인다는 결과를 거듭 확인하고 있다. 다만 이 효과는 단순히 외국에 '있었다'는 사실에서 오지 않는다. 낯선 문화와 적극적으로 마찰하고 그것을 내면화한 뒤 귀환했을 때 비로소 나타난다. 연어가 바다를 그냥 통과한 것이 아니라 그 바다에서 자라고 성숙했기 때문에 산란할 수 있듯이.
반론도 있다. 여행하지 않고도 깊이 성찰하는 사람이 있고, 평생 여행만 하면서도 자신을 조금도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맞다. 이동 자체가 성숙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익숙한 환경이 주는 안락함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성찰의 필요를 거세한다. 불편함 없이 깊은 자기 인식에 이르는 것은 훈련된 소수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일반적인 인간에게 외부의 자극과 낯섦은 성장을 촉진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조건이다. 연어가 바다라는 극한 환경 속에서 성체로 자라듯, 인간도 익숙함의 경계 밖에서 더 잘 자란다.
이를 '회유 이론'이라 부를 수 있겠다. 인간도 회유어처럼, 자신의 뿌리를 떠나 낯선 세계를 경험하고 귀환할 때 비로소 출발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성숙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가설이다. 이 이론이 옳다면, 여행의 진짜 효과는 목적지의 화려함이 아니라 귀환 후 일상을 다시 읽어내는 능력에서 측정되어야 한다.
우리가 여행을 계획할 때 '어디를 갈 것인가'만큼 '돌아와서 무엇을 다르게 볼 것인가'를 물을 수 있다면, 그 여행은 비로소 연어의 귀환처럼 완성된다. 떠나는 것은 결국 제대로 돌아오기 위해서다. 그 역설을 이해한 사람만이 여행에서 진짜 무언가를 가지고 돌아온다는 것을,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