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AHA COLUMN
변호사 칼럼
법률 이슈와 실무에 대한 변호사의 시선
2026.06.08
[변호사 칼럼] E = mc², 에너지의 균형과 인간사회의 법칙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특수상대성 이론의 공식 E = mc² , 즉 질량과 에너지는 서로를 바꾸며 항상성을 유지한다. 질량이 변하면 에너지가 생기고, 에너지가 과도하면 물질은 이를 배출하며 다시 평형을 찾는다. 그 과정은 때로 안정적이지만, 때로는 거대한 혼란을 동반한다. 핵폭탄처럼 갑작스러운 강력한 에너지의 유입은 거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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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8
[변호사 칼럼] 조선의 율관과 오늘의 판사 - 법기술이 도리를 대신할 때
조선의 법제는 의외로 섬세했다. 법을 다루는 사람과 판단하는 사람을 분리해 두었다. 법문을 해석하고 형률을 정리하는 사람은 율관( 律官 ), 즉 법기술자였다. 반면, 형벌을 결정하고 판단을 내리는 사람은 인의예지( 仁義禮智 )를 배운 선비, 즉 도덕적 교양을 갖춘 자였다. 조선의 기본 전제는 단순했다. 법기술은 기술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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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8
[변호사 칼럼] 조선의 과거제 현대의 입시제도 - 평등을 말하며 불평등을 설계하는 사회
조선의 과거제는 양반만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실제로는 양인, 즉 평민도 응시할 수 있었다. 법으로는 평등한 제도였다. 실제로 몇몇 양인들이 과거에 합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직관적으로 안다. 평민이 과거에 오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음을. 왜일까. 한문으로 된 『사서오경』을 읽고 외우며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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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9
[변호사 칼럼] 운은 실력일까? 실력은 운일까?-성공 서사의 함정과 그 너머
“나는 왜 저 사람처럼 되지 못했을까?”“나는 충분히 노력했는데, 왜 결과는 다를까?” 이 질문은 누구나 한번쯤 품어봤을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성공을 보며 쉽게 자신을 의심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타인의 ‘결과’만 보고 자신의 ‘과정’을 부정한다. 하지만 이때 우리가 자주 놓치는 요소가 하나 있다. “운”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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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9
[변호사 칼럼] 한국식 능력주의는 왜 더 잔인한가 - 지옥의 사다리 위에서
우리는 늘 말한다.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라고. 그 말을 가장 극단적으로 구현한 나라가 있다. 미국이다. 그리고 그 사회를 이상적으로 여기며 따라온 나라가 있다. 한국이다. 그러나 이제 분명히 말해야 한다. 미국식 능력주의는 실패했고, 한국식 능력주의는 그 실패를 더 교묘하고 더 잔인하게 수입했다.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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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9
[변호사 칼럼] 능력주의의 허상 - 신분제를 재생산하는 공정의 탈
오늘날 우리는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사회’를 이상적인 구조로 여긴다. 어떤 배경에서 태어났든, 스스로 노력하고 실력을 쌓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 말 속에는 치명적인 맹점이 숨어 있다. 능력주의는 공정의 이름으로 불공정을 정당화하고 있으며, 그 결과 현대사회는 새로운 형태의 ‘신분제’로 변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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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9
[변호사 칼럼] 탄소에서 실리콘으로 - 인간, 그리고 다음 존재에 대하여
우리는 탄소라는 화학물질로 이루어진 존재다.수십억 년 전, 지구의 우연한 조건 속에서 탄소 기반 분자가 자가복제를 시작했고, 그 복잡한 화학작용은 수많은 우연을 지나 마침내 ‘인간’이라는 생명체로 진화해왔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낸 지능은 이제, 스스로의 경계를 넘어서려 하고 있다. 그 지능은 더 이상 단백질이나 세포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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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8
[변호사 칼럼] 법원이 보여준 ‘국민이 원하는 정의’… 그런데 왜 찜찜할까?
법원이 보여준 ‘국민이 원하는 정의’… 그런데 왜 찜찜할까? 최근 이재명 사건과 윤석열 사건을 거치며, 법원이 보여주는 태도는 한마디로 ‘국민이 바라는 정의’ 그 자체였다. 이재명 사건 – 신속하고 공평하며, 더욱 엄격하게 이재명 사건에서 법원은 국민들이 그토록 원해온 세 가지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첫째,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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